
해외에서 오랜 시간 살아보면 의외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그중에서도 옷차림에 대한 자유는 가장 달콤한 변화 중 하나다. 한국을 잠시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거리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얼마나 세련되고 유행에 민감한지이다. 하지만 해외 생활 14년 차인 나는 이제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옷을 신경 쓰지 않아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이곳 키르기즈스탄에서의 삶은, 어쩌면 내가 원하던 자유를 준다.
며칠 전, 오쉬라는 남부 도시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옷을 수선할 일이 생겨 도시 중심에 있는 수선 가게를 찾아갔다. 수선 가게들이 모여 있는 낡은 건물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단순히 몇몇 옷을 고쳐 입고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곳이 나에게 뜻밖의 시간을 선물할 줄은 몰랐다.

낡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려던 찰나, 1층에서 눈에 띄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곳은 구 소련 시절의 빈티지 시계를 파는 시계 가게였다. 오래된 시계들이 가게 안에 줄지어 있었고, 마치 시간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섰고, 자연스럽게 가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 안에는 각종 기계식 벽시계들이 줄줄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몇십 년은 되어 보이는 시계들이었다. 그중에는 구 소련 시절의 시계들이 많았고, 심지어 작동 중인 것도 있었다. 기계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며 작동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이 시계들이 수십 년 전, 아마도 키르기즈스탄이 소련의 일부였던 그 시절부터 이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게 주인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그는 내게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는 소련 시절부터 시계를 고쳐왔고, 지금도 직접 수리하면서 손님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를 소개했다. 194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기계식 벽시계였다. 이 시계는 오랜 세월 동안 집안의 중심에 걸려 있었고, 수많은 세대가 이 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했다며 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오래된 시계 하나를 꺼내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금속 장식이 달린 이 시계는 과거의 찬란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수리할 때마다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눈빛에는 깊은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그가 설명하는 동안 나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였다. 시계마다 담긴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치 그 시계들이 시간을 초월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가게 구석에 놓인 다른 기계식 시계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여전히 작동하는 시계가 있었다. 깔끔한 유리 케이스에 담긴 금색의 이 시계는 소련이 붕괴되기 전 마지막으로 제작된 모델 중 하나라고 한다. 그 시계를 보고 있자니, 지나간 시대의 영광과 함께 사라진 소련의 흔적들이 떠올랐다. 시간을 초월한 기계의 움직임이 마치 그 시대의 역사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 가게가 단순한 시계 판매점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가끔씩 이곳에서 열리는 빈티지 시계 애호가들의 비밀 모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 정기적으로 시계 애호가들이 이곳에 모여 자신만의 시계를 자랑하고 교환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이 모임에서는 자신이 소유한 시계에 얽힌 사연을 나누고, 서로의 시계를 분석하며 깊은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나는 이 흥미로운 모임에 참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게를 나서면서 나는 오래된 시계를 하나쯤 사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곧 떠날지도 모를 이방인의 삶을 사는 나로서는 부피가 큰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마음에 드는 시계를 뒤로한 채 아쉬움을 삼키며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했다.
그날의 짧은 만남은 나에게 작은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 되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의 세상 속에서, 마치 시간을 멈춘 듯한 그 시계들은 내게 과거의 낭만을 일깨워 주었다. 가끔은 이렇게 우연히 찾아오는 순간들이 해외 생활을 더욱 특별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이곳 오쉬에서 발견한 구 소련 시계점은 내가 이 도시에서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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