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 중앙아시아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에서의 일, 사랑, 육아, 취미, 여행, 캠핑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관용을 모든 일에는 사랑을!! 자세히보기

국제개발협력 이야기

굿바이 타지키스탄, 반가워 키르기스스탄

중앙아시아 라이프 2021. 11. 11. 11:32

양봉 소득증대 프로젝트 사업장 모니터링 방문

# 굿바이 타지키스탄

 

정말 뜨거운 열정과 마음만 가지고 국제개발협력의 첫 발을 디딘 타지키스탄에서 만 4년의 시간을 보냈다. 

보통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프로젝트가 1년~3년 단위로 구성이 되기도 하고,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사업을 하는 단체마다 해외파견 기간을 보통 1년에서 4년 단위로 하고 있다. 즉, 해외 파견은 시작과 끝이 있고 만남과 혜어짐의 경험은 피해 갈 수 없다. 

 

 

1년 동안 해외 파견직을 하려고 나왔으나 타지키스탄에서 처음 경험한 해외근무는 내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가 되어서 지금까지 10여년이 넘게 해외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게기가 되었고 업무 및 조직의 특성상 수많은 현지 직원들의 리더 역할을 해내야만 했다. 한국에서 근무할 때 대리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 큰 조직의 리더십 그룹에 들어가면서 나의 잠재력과 탁월함을 발견하면서 많은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의 한계와 연약함의 밑바닥을 볼 수 있었다.

 

 

하는 일의 특성상 누군가를 돕고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하면서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상당히 드문 삶을 살았는데, 타지키스탄에 도착하자마자 새로운 문화와, 언어, 환경, 음식 등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에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호의와 도움을 받았다. 이런 경험은 도움받는 사람의 입장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타지키스탄을 떠날때에는 다시는 타지키스탄에서 다시 근무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으나 4년 후에 다시 타지키스탄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근무했던 곳에서 다시 근무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마지막인 것처럼 타지키스탄을 떠났었지만 사람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게 맞다.

봉사단원들과 기념촬영

# 코이카 NGO 봉사단, 그리고 국제개발협력으로의 입문, 취업

 

 

코이카에서 예산을 지원해서 KCOC에 소속된 한국 국제개발협력NGO의 개발협력 현장에 파견되는 NGO 봉사단원.

2011년부터 매년 평균 2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매년 만나고 헤어졌다. 2018년의 경우 굿네이버스 타지키스탄 사업국에는 3명의 NGO 봉사단원이 배정되어서 같이 근무를 했었다. 그 중에 2명은 굿네이버스에 취업해서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2명 중 1명은 아프리카 차드로 파견되어 근무를 하는 등, NGO봉사단 프로그램을 통해서 국제개발협력분야로 자연스럽게 입문할 수 있었다. 

 

 

국제개발협력분야가 상당히 광범위하고 세분화되어 있는 게 다른 외국의 국제단체들을 보면 일반적이나 아직까지 한국의 개발협력 단체의 대부분은 스페셜리스트보다는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운영하는 중간관리자급 혹은 최고 관리자급의 인력을 보통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규모 양자 혹은 다자 프로젝트의 경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투입되기도 하지만 그런 전문성을 가진 역할을 하기란 일반적으로 국제개발 및 사회복지를 전공해서는 가능하지 않고 일반 타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인력이 투입되는 게 일반적이다. 

 

 

종종 국제개발협력 활동에 대한 강의를 할 기회가 있는데 이 분야로의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 이유는 인력을 채용할 당시 상당한 고스팩을 요구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해외로 파견이 되지만 기대하는 수준의 급여와 처우, 근무환경을 제공받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서 장기 근무를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많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열악한 근무환경 및 생활환경 교육환경 때문에 보통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기면 해외에서 체류하면서 장기근속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더 어려워진다. 공공기관의 일자리는 그나마 가족들과 생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원 및 장치들이 되어 있지만 민간 부분 일자리의 경우 중소형 NGO에서 해외 파견이 된 경우 매우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타지키스탄에 거주했었던 아파트 집주인 가족과 마지막 작별인사
타지키스탄 친구와 형님들

# 그리운 사람들과 좋은 이웃

 

 

해외에서 오래 살면 그동안 한국에서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 친척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매우 간결해진다. 마치 서울에 살던 초등학생이 시골에 작은 학교로 전학을 가서 다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느낌과 같을까? 타지키스탄에는 약 100여면의 교민들이 거주하는데 보통 40대 이상의 교민들이 대부분이라서 비슷한 나이 또래의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랬을까? 타지키스탄에서는 5~10살 정도 나이 차이도 같이 만나고 교재 하는 것에 큰 장애가 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교민 숫자가 적은 곳 중에 한 곳인 타지키스탄은 그래서 교민들 사이가 매우 돈독하고 소문도 빠르다. 

 

 

난생처음 들어본 타지키스탄이라는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비슷한 또래의 형들과 누나들이 너무 살갑고 반갑게 맞아줘서 낯선 땅에서 재미있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사진을 보니 모두가 다른 나라로 흩어져서 살고 있다. 위에 같이 사진을 찍은 지 벌써 만 7년이 넘게 지났구나. 한국 대사관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서 다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교민 숫자가 적은 나라에 거주하면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자주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 위치한 세레나호텔 로비에서 마지막 송별회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쉬켁

 

# 키르기스스탄, 새로운 도전

 

 

타지키스탄에서 만 4년의 파견 생활을 하면서 아내를 만났다. 키르기스에 법인을 만들어서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 타지키스탄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계속 연착이 되어서 키르기스스탄에 밤 12시가 넘은 새벽에 도착했다.  시내까지 택시를 타고 가려고 택시기사와 흥정을 하는데 적정 가격이 얼마인 줄 알고 있었지만 새벽까지 공항에서 손님을 전략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택시기사들과 흥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첫날부터 이렇게 호갱이가 되는 경험으로 키르기스스탄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타지키스탄에서의 삶은 모든 게 세팅이 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면 키르기스스탄에서의 삶은 모든 것을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도 이 당시에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고 와이프가 거의 반 직원처럼 모든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직원을 1명 구하고 사무실을 찾고, 법인을 등록할 수 있는 변호사를 소개받아서 법인등록을 시작하고, 집을 구하고 끝이 이 없을 것만 같은 삶과 일이 뒤엉킨 삶을 살다 보니 어느덧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다.